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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들뢰즈와 욕망 기계

by 라픽 2026. 1. 15.

명품 가방을 보는 순간 갖고 싶어집니다. 그 가방이 없어도 지금까지 잘 살았는데, 보는 순간 필요해집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제주도 카페 사진을 보면 당장 떠나고 싶어집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여행 계획이 없었는데 말이죠.

이상한 일입니다. 욕망은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 같지만, 가만 보면 밖에서 들어온 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정말 저것을 원하는 걸까요, 아니면 원하도록 만들어진 걸까요?

철학자 질 들뢰즈는 이 질문에 대해 평생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내놓은 개념이 '욕망 기계'입니다.

욕망은 부족이 아니라 생산이다

보통 우리는 욕망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무언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 배가 고프니까 음식을 원하고, 외로우니까 사랑을 원하고, 가난하니까 돈을 원한다고.

들뢰즈는 이 생각을 뒤집었습니다.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생산이라고. 욕망은 무언가가 없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내는 힘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예를 들어볼게요.

당신은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스마트폰을 원했나요? 아니었습니다.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주변 사람들이 쓰기 시작하자 갑자기 필요해졌습니다. 욕망이 생긴 겁니다.

이 욕망은 당신 안에 원래 있던 게 아닙니다. 스마트폰이라는 대상, 그것을 광고하는 회사, 그걸 쓰는 사람들, 그것 없이는 불편한 사회 시스템. 이 모든 것들이 결합하면서 욕망이 '생산'된 겁니다.

들뢰즈는 이걸 '욕망 기계'라고 불렀습니다. 기계처럼 작동하면서 끊임없이 욕망을 만들어내는 시스템.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은 누가 심었나

"성공하고 싶어요." 이 말을 할 때 우리는 무엇을 떠올릴까요? 대부분 비슷한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좋은 직장, 높은 연봉, 좋은 차, 넓은 집, 해외여행.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왜 모두가 비슷한 것을 성공이라고 부를까요?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이런 욕망이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성공을 원하도록 학습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들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야지." "좋은 회사 들어가야지." "돈 많이 벌어야지." TV를 켜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SNS를 열면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서 우리 안에 욕망이 새겨집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욕망,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 강남에 집을 사고 싶다는 욕망.

들뢰즈라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 욕망은 당신이 자발적으로 원한 게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당신 안에 생산한 것이라고.

 

광고는 욕망을 어떻게 만드는가

광고를 보면 들뢰즈의 말이 더 명확해집니다.

명품 브랜드 광고를 떠올려보세요. 그들은 가방의 기능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우아한 여성, 멋진 남성,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그 속에 자연스럽게 가방이 놓여 있습니다.

광고가 파는 건 가방이 아닙니다. 그 이미지를 파는 겁니다. 저 가방을 가지면 당신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환상. 저 삶을 살 수 있다는 약속.

그래서 우리는 가방을 원합니다. 정확히는 그 가방이 상징하는 삶을 원합니다. 그리고 그 욕망은 광고를 보기 전에는 없던 것입니다.

이게 들뢰즈가 말한 욕망의 생산입니다. 광고, 미디어, SNS가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그 욕망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삽니다.

SNS가 만드는 욕망의 사슬

인스타그램을 열면 모두가 멋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예쁜 카페, 맛있는 음식, 멋진 여행, 완벽한 몸매, 아름다운 인테리어.

처음엔 그냥 구경합니다. 그런데 자꾸 보다 보면 변합니다. 나도 저런 카페에 가고 싶어집니다. 저런 몸을 만들고 싶어집니다. 저런 집에서 살고 싶어집니다.

욕망이 생긴 겁니다. 하지만 이 욕망은 어디서 왔을까요?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걸까요? 아니면 SNS를 보면서 만들어진 걸까요?

들뢰즈의 관점에서 보면 명확합니다. SNS는 거대한 욕망 생산 기계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보여주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냅니다. "저것도 가져야 해, 이것도 해야 해, 저기도 가야 해."

그리고 우리는 그 욕망을 따라 살아갑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욕망 기계 안에서 살아가기

들뢰즈의 이야기가 암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그냥 조종당하며 사는 건가요? 내 욕망이라는 건 없는 건가요?

들뢰즈는 체념을 말하려던 게 아닙니다. 오히려 깨달음을 주려 했습니다. 욕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고.

"나는 이게 정말 갖고 싶은 걸까?" "이건 내가 원해서 원하는 걸까, 아니면 원하도록 만들어진 걸까?" "광고를 보고 생긴 욕망인가, 아니면 진짜 필요한 걸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욕망 기계의 작동 방식이 보입니다. 그리고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욕망을 따를지, 아니면 거부할지.

진짜 내 욕망을 찾는다는 것

그렇다면 진짜 내 욕망이란 뭘까요? 들뢰즈는 이 질문 자체를 다르게 봤습니다.

'진짜' 욕망과 '가짜' 욕망을 나누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모든 욕망은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생산됩니다. 완전히 순수한, 외부 영향 없는 욕망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욕망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입니다. 욕망에 끌려다니는가, 아니면 욕망을 의식하며 선택하는가.

예를 들어볼까요. 명품 가방을 갖고 싶다는 욕망. 이게 광고에 의해 만들어진 거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욕망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여기서 선택이 시작됩니다. 이 욕망을 그냥 따를 것인가? 아니면 "이 가방이 내 삶을 정말 바꿀까?" "이게 지금 내게 필요한가?" 물어볼 것인가?

욕망을 의식하는 순간,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주체가 됩니다.

욕망과 함께 사는 법

들뢰즈는 욕망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욕망은 삶의 동력이라고 봤습니다. 욕망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맹목적으로 욕망을 따르지 말라는 겁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보라는 거죠.

"왜 이게 갖고 싶어졌지?" "누가, 무엇이 이 욕망을 만들었지?" "이걸 가지면 정말 행복할까?"

이런 질문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만듭니다. 욕망 기계에 휘둘리지 않고, 욕망과 함께 살아가는 법.


우리는 욕망 기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광고, SNS, 미디어가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생산합니다. 성공해야 한다는 욕망, 예뻐야 한다는 욕망, 가져야 한다는 욕망.

하지만 이걸 아는 것만으로도 달라집니다. 욕망이 어디서 왔는지 볼 수 있으면,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짜 물을 수 있습니다.

"이건 정말 내가 원하는 걸까?"

들뢰즈가 우리에게 준 선물은 바로 이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