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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 왜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가

by 라픽 2026. 2. 2.

뉴스를 보면 이해가 안 됩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전 재산을 바치고 가족과 연락을 끊습니다.

주변에서 말립니다. 가족이, 친구가 정신 차리라고 하지만 오히려 화를 냅니다.

"당신들은 몰라. 이건 진리야."

왜 그럴까요? 바보라서? 무식해서? 아닙니다. 종종 고학력자, 전문직 종사자들이 사이비에 빠집니다. 지능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유는 무겁다

1941년,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썼습니다. 나치가 집권한 독일을 보면서 프롬은 질문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독재자를 따르는가?

프롬의 답은 이랬습니다. 자유는 무겁다고. 자유로워지면 선택해야 합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책임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를 생각해보세요. 농노는 자유롭지 않았지만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태어난 신분이 정해져 있고, 할 일이 정해져 있고, 믿을 것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확실함을 주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분제가 무너지고, 종교의 권위가 약해지고, 개인이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정함도 함께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답이 없습니다.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유입니다. 하지만 이 자유가 더 무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프롬은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자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친다고. 다시 누군가에게 복종하려 한다고. 그것이 편하니까.

 

사이비가 제공하는 것

사이비 종교는 정확한 것들을, 아니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줍니다. 확실한 답. 명확한 지침. 안정감.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친절하거 따뜻하게 맞아줍니다. "여기가 당신이 찾던 곳이에요. 우리가 답을 알고 있어요."

당신은 삶에 대해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삶의 의미가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모든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확신에 차 있습니다.

"이 책에 모든 진리가 있어요." "교주님이 말씀하셨어요." "이 길만 따라오면 구원받아요."

얼마나 편안한가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의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따라가면 됩니다. 프롬이 말한 '자유로부터의 도피'입니다.

당신은 특별하다

사이비는 또 다른 것을 제공합니다. 특별함.

세상은 당신을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당신은 부품일 뿐입니다. 언제나 대체될 수 있죠. 아무도 당신이 특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이비는 다릅니다. "당신은 선택받은 사람이에요. 우연히 여기 온 게 아니에요. 신이 당신을 이끌었어요."

기분이 좋아집니다. 평생 평범하게 살았는데, 처음으로 특별해진 느낌입니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된 느낌입니다.

교주는 당신을 알아봅니다. 칭찬합니다. "당신의 믿음이 강하군요.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해요." 인정받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헌금을 합니다. 처음엔 작은 돈입니다. "감사의 표시로 조금만." 하지만 금액은 점점 커집니다. "이번에 큰 기도회가 있어요. 좀 더 내면 더 큰 축복이..."

돈을 내면 낼수록 빠져나오기 어려워집니다. "이미 이만큼 냈는데, 이게 헛된 거였어?" 인정하기 싫습니다. 그래서 더 냅니다. 더 믿으려 합니다.

집단의 압력

사이비 안에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같은 것을 믿는 사람들.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는 가족 같은 느낌입니다.

외로움이 큰 사람들에겐 참 강력한 힘이죠.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낍니다. "여기가 내 자리구나."

하지만 이 소속감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의심하지 말 것. 교리를 따를 것. 헌금할 것. 조건을 어기면 어떻게 될까요?

"믿음이 부족하네요." "사탄이 당신을 시험하는 거예요." "의심하면 지옥 갑니다."

두렵습니다. 이 공동체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외로워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심을 억누릅니다. 더 믿으려 애씁니다.

왜 똑똑한 사람도 빠지는가

사이비에 빠지는 건 지능의 문제가 아닙니다. 심리의 문제입니다.

똑똑한 사람도 외롭고 불안합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싶고 특별해지고 싶어 합니다. 확실한 답을 원합니다.

오히려 똑똑한 사람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자기 합리화를 잘하니까요. "내가 이렇게 많이 공부했는데, 이게 사이비일 리 없어. 분명 깊은 진리가 있을 거야."

프롬이 본 것도 이겁니다. 나치를 따른 사람들이 바보였을까요? 아닙니다. 교육받은 중산층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자유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을 뿐입니다.

빠져나오기 어려운 이유

사이비에서 나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돈을 냈고, 가족과 멀어졌습니다. 친구까지 잃었습니다. 

이 모든 게 헛된 거였다고 인정한다는 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계속 믿으려 합니다. "조금만 더 하면 진짜 축복이 올 거야." 도박 중독과 비슷합니다. 이미 잃은 게 많아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교단 밖 세상은 낯섭니다. 다시 혼자입니다. 다시 불안합니다. 다시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프롬이 말한 자유의 무게가 돌아오고, 두려움을 가득 차게 됩니다.

자유를 견디는 법

프롬은 해결책도 제시했습니다. 자유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자유는 단순히 "~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를 위한 자유"가 되어야 합니다. 권위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창조하는 자유.

확실한 답을 주는 권위에 의존하지 않기. 불안해도 스스로 질문하기. 혼자여도 견디기. 이것이 진짜 자유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프롬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이 사이비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사이비는 당신에게 답을 줍니다. 하지만 그 답은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생각을 멈춥니다. 복종하도록 만듭니다.

진짜 자유는 불확실함을 견디는 겁니다. 답이 없어도 계속 질문하는 겁니다. 외로워도 자기 길을 가는 겁니다.


사이비에 빠진 사람을 비난하기 쉽습니다. "왜 저렇게 바보같이."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같습니다. 다만 자유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을 뿐입니다.

우리도 다를까요? 누군가 확실한 답을 준다면, 모든 불안을 없애준다면, 특별하다고 말해준다면. 우리는 저항할 수 있을까요?

프롬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자유를 견딜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