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세기 중국. 한 남자가 나무 아래 누워 있습니다. 장자(莊子)입니다. 제자가 묻습니다. "선생님, 저 큰 나무를 보십시오. 저렇게 크고 울퉁불퉁해서 목수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쓸모가 없습니다."
장자가 웃으며 답합니다. "그래서 저 나무는 살아남았지. 쓸모 있었다면 진작 베어졌을 거야."
이상한 대답입니다. 쓸모없는 게 왜 좋은 일일까요? 장자의 철학은 바로 이 뒤집힌 시각에서 시작됩니다.
장자는 누구인가
장자는 기원전 369년쯤 태어났습니다. 공자보다 200년쯤 뒤, 맹자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습니다. 하지만 유학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장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많지 않습니다. 한때 칠원(漆園)이라는 곳의 하급 관리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가난하게 살았고, 권력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초나라 왕이 사신을 보냅니다. 재상 자리를 제안합니다. 높은 지위, 큰 권력, 부와 명예. 장자는 거절합니다.
"진흙탕에서 꼬리를 흔들며 사는 거북이가 행복할까, 아니면 죽어서 왕궁에 진열된 거북이 껍데기가 행복할까? 나는 진흙탕에서 꼬리를 흔들며 살겠네."
이것이 장자입니다. 세상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웃어넘기는 사람.
소요유 - 절대적 자유
『장자』의 첫 편이 '소요유(逍遙遊)'입니다. 자유롭게 노닐다, 라는 뜻입니다.
장자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북쪽 바다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크기가 몇천 리인지 모릅니다. 이 물고기가 변해서 붕(鵬)이라는 새가 됩니다. 날개가 하늘을 가립니다.
붕이 날아오릅니다. 구만 리 높이까지 올라갑니다. 작은 새들이 웃습니다. "저 새는 왜 저렇게 높이 날아? 우리는 나뭇가지 사이를 날면 되는데."
장자는 묻습니다. 작은 새와 큰 새, 누가 더 자유로울까요?
겉보기엔 큰 새가 자유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장자는 말합니다. 둘 다 자유롭지 못하다고. 작은 새는 나뭇가지에 의존하고, 큰 새는 바람에 의존합니다. 진짜 자유는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요유입니다. 절대적 자유.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상태.

제물론 - 모든 것은 같다
『장자』의 두 번째 편이 '제물론(齊物論)'입니다. 모든 것을 같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우리는 구분합니다. 크고 작음, 좋고 나쁨, 아름답고 추함, 옳고 그름. 하지만 장자는 묻습니다. 그 구분은 절대적일까요?
작은 새에게 나뭇가지 사이를 나는 것이 자유입니다. 큰 새에게 구만 리 높이를 나는 것이 자유입니다. 누가 맞나요? 둘 다 맞습니다. 관점의 차이일 뿐입니다.
장자는 유명한 이야기를 합니다.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줍니다.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마." 원숭이들이 화를 냅니다. 그러자 말합니다.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원숭이들이 좋아합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 하루에 일곱 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원숭이들은 순서만 바뀌었는데 만족합니다.
장자는 웃습니다. 사람도 비슷하지 않나고. 본질은 같은데 형식만 바꾸면 만족하거나 화를 냅니다.
호접지몽 - 나는 누구인가
장자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장자가 꿈을 꿉니다. 자신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는 꿈. 행복합니다. 자신이 장자라는 것도 잊어버립니다.
깨어납니다. 장자는 생각합니다.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걸까? 아니면 지금 나비가 장자가 되는 꿈을 꾸는 걸까?
이것이 호접지몽(胡蝶之夢)입니다.
장자는 진지하게 묻습니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가? 나는 정말 장자인가, 아니면 나비인가? 아니, 애초에 '나'라는 게 확실한가?
이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닙니다. 장자는 고정된 정체성, 절대적 실재를 의심합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흐르고, 상대적입니다.
무용지용 - 쓸모없음의 쓸모
장자는 '쓸모'에 대해 자주 이야기합니다.
어떤 나무가 있습니다. 너무 커서 목수들이 관심도 없습니다. 울퉁불퉁해서 가구도 못 만들고, 뒤틀려서 기둥도 못 됩니다.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살아남았습니다. 쓸모 있는 나무들은 다 베어졌습니다. 쓸모없는 나무만 천년을 삽니다.
장자는 말합니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알아야 한다고. 무용지용(無用之用)입니다.
세상은 쓸모를 따집니다. 이것은 쓸모 있고, 저것은 쓸모없다고. 하지만 장자는 묻습니다. 누구에게 쓸모 있나요? 무엇을 위한 쓸모인가요?
쓸모 있으려고 하면 소모됩니다. 쓸모없으면 온전합니다. 역설입니다.

물처럼 흐르는 삶
장자는 물을 자주 비유로 씁니다.
물은 자기 모양이 없습니다. 그릇에 따라 모양이 바뀝니다. 강물은 돌을 만나면 돌아갑니다. 막히면 고이고, 길이 열리면 흐릅니다.
장자가 제자들과 다리 위를 걷습니다. 물고기들이 헤엄칩니다. 장자가 말합니다. "물고기들이 즐겁구나."
제자 혜시가 묻습니다. "선생님은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즐거운지 아십니까?"
장자가 답합니다. "자네는 나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고 아는가?"
장자의 논리는 항상 이렇습니다. 뒤집고, 비틀고, 경계를 흐립니다. 확실한 것이 없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불확실함 속에서 자유를 찾습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
장자는 평생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양혜왕이라는 사람에게 곡식을 빌리러 갑니다. 양혜왕이 말합니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내가 세금을 거둬들이면 300금을 빌려드리겠소."
장자가 답합니다.
"어제 오는 길에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에 붕어가 있었소. 붕어가 말했소. '물 한 바가지만 주시오.' 내가 말했소. '조금만 기다리시오. 내가 남쪽으로 가서 강물을 끌어오겠소.' 그러자 붕어가 말했소. '그럴 거면 나를 생선 가게에서 찾으시오.'"
장자는 권력자의 도움을 거부합니다. 타협하지 않습니다. 가난해도 자유롭게 살기를 택합니다.
장자가 남긴 것
장자는 기원전 3세기쯤 죽었습니다. 그가 남긴 『장자』는 33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장자가 쓴 건 7편 정도고, 나머지는 제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장자의 철학은 비실용적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 돈을 버는 법도, 성공하는 법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비웃습니다.
하지만 장자는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가?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은 정말 가치 있는가? 우리는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는가?
쓸모 있으려고 애쓰다 보면 쓸모로 환원됩니다. 도구가 됩니다. 장자는 말합니다. 쓸모없어도 괜찮다고. 쓸모없을 때 오히려 온전하다고.
장자를 읽으면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확실한 게 없어집니다. 그게 장자가 원한 것입니다.
고정된 틀을 깨는 것. 절대적 진리를 의심하는 것. 그리고 그 불확실함 속에서 진짜 자유를 찾는 것.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나요? 아니면 나비가 당신이 되는 꿈을 꾸는 건가요? 장자라면 웃으며 말할 겁니다.
"그게 중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