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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미래로 나를 던지는 용기 - 하이데거와 기투의 철학

by 라픽 2026. 1. 20.

3년째 퇴사를 고민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말합니다. "조금만 더 준비하고 할게." 돈을 더 모으고, 공부를 더 하고, 계획을 더 세우고. 그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다른 친구는 책을 쓰고 싶어 합니다. 10년 넘게 쓰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직 한 줄도 쓰지 못했습니다. "완벽하게 구상이 끝나면 시작할 거야." 구상은 언제 끝날까요? 아마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시작을 미룰까요?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이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투(企投, Entwurf)'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기투란 무엇인가

기투(企投). 한자를 보면 의미가 명확합니다. 企는 '꾀하다, 도모하다', 投는 '던지다'. 즉 자신을 미래로 던진다는 뜻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이렇게 봤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미래로 던지는 존재라고. 지금 여기에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아직 아닌 것'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

쉽게 말하면 이겁니다. 당신은 지금 학생이지만, 미래에는 직장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회사원이지만, 창업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초보지만,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직 아닌 나'를 향해 자신을 던지는 것. 그게 기투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기투는 결과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던진다고 해서 반드시 도착하는 게 아닙니다. 실패할 수도 있고, 예상과 다른 곳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던져야 합니다. 그게 인간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니까요.

완벽한 준비는 없다

하이데거가 기투를 이야기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사람들은 미래를 완벽하게 계획하고 싶어 하니까요. 모든 변수를 고려하고, 모든 위험을 제거하고, 확실해진 다음에 시작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준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래는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니까요.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아무리 준비를 해도, 실제로 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창업을 예로 들어볼까요. 사업 계획서를 완벽하게 쓸 수 있습니다. 시장 조사도 철저히 하고, 경쟁사도 분석하고, 재무 계획도 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시작하면 계획과 다른 일들이 벌어집니다. 예상 못 한 문제가 생기고,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오고, 계획은 계속 수정됩니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말합니다. 완벽하게 준비되기를 기다리지 말라고. 인간은 던져진 존재(피투, Geworfenheit)이면서 동시에 던지는 존재(기투)라고. 이미 이 세상에 던져졌으니, 이제는 스스로 미래로 자신을 던져야 한다고.

가능성으로 존재한다는 것

하이데거는 인간을 '가능성의 존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고정된 무언가가 아니라, 무엇이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돌은 그냥 돌입니다. 과거에도 돌이었고, 미래에도 돌일 겁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르고, 미래의 나는 또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가능성이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지만, 동시에 불안하게도 만듭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건, 무엇이 될지 모른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성을 닫아버립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정의하면서 더 이상 변화하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이렇게 사는 걸 '비본래적 실존'이라고 불렀습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회피하는 삶. 안전하고 편하지만, 진정으로 살아있는 건 아닌 삶.

반대로 '본래적 실존'은 자신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불확실하고 불안하지만,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을 던지는 삶.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시도하는 삶.

죽음 앞에서 진지해지는 삶

하이데거는 죽음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좀 무겁게 들릴 수 있지만, 중요한 지점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아직 멀었어", "나는 괜찮을 거야" 하면서 외면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가장 확실한 미래입니다. 언젠가 반드시 죽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이데거는 이 죽음을 직면할 때 삶이 달라진다고 봤습니다. 시간이 유한하다는 걸 받아들이면, 미루는 게 불가능해집니다. "나중에 해야지"가 아니라 "지금 해야지"가 됩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진지해집니다.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기투하게 됩니다. 불확실하더라도, 실패할 수도 있더라도, 지금 자신을 던집니다.

현대인은 왜 기투하지 못하는가

하이데거가 살던 20세기 초반도 그랬지만, 21세기는 더 심합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기투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습니다. SNS 시대에 실패는 공개적으로 망신당하는 일이 됐습니다. 그래서 안전한 선택만 하려 합니다.

둘째, 선택지가 너무 많습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못 합니다.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계속 고민하다가 시간만 흘러갑니다.

셋째, 완벽주의가 만연합니다. 준비가 완벽해야 시작한다는 생각. 하지만 완벽은 오지 않고, 시작은 계속 미뤄집니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이런 삶은 비본래적입니다. 가능성을 회피하고, 자신을 던지지 않고, 안전지대에만 머무는 삶. 실패는 없지만 진짜 살아있는 것도 아닌 삶.

던져진 존재, 던지는 존재

하이데거의 철학에는 두 가지 '던짐'이 있습니다. 피투(被投, Geworfenheit)와 기투(企投, Entwurf).

피투는 '던져진 상태'입니다. 우리는 선택하지 않고 이 세상에 던져졌습니다. 부모를 선택하지 못했고, 시대를 선택하지 못했고, 나라를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주어진 조건 속에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기투는 다릅니다. 기투는 우리가 스스로 던지는 겁니다. 주어진 조건을 넘어서, 미래를 향해 자신을 던지는 겁니다.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우리의 삶이 됩니다. 던져진 조건은 바꿀 수 없지만, 그 조건 위에서 어떻게 자신을 던질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게 하이데거가 말한 실존입니다.

기투의 용기

기투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결과를 알 수 없는데 뛰어드는 것. 실패할 수도 있는데 시도하는 것.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것.

하지만 이 용기는 무모함과 다릅니다. 무모함은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기투는 불확실성을 알면서도 선택하는 겁니다.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던지는 겁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던진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던지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려 하지 말고, 던져보라고. 불완전해도 시작하라고. 그게 인간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지금, 여기서 던지기

당신이 미루고 있는 게 있나요? 언젠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있나요? 조금만 더 준비하면 시작할 거라고 믿고 있나요?

하이데거라면 이렇게 물을 겁니다. 언제까지 기다릴 건가요? 완벽한 준비가 끝날 때까지? 그럼 영원히 시작하지 못할 겁니다.

기투는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납니다. 미래에 준비가 끝나면 하는 게 아니라, 지금 불완전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물론 두렵습니다. 실패할까 봐, 망신당할까 봐, 후회할까 봐. 하지만 던지지 않고 사는 것도 하나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것과,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둘 중 어느 쪽에서 더 후회가 적을까요?


하이데거의 기투는 거창한 개념이 아닙니다. 그냥 시작하라는 겁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준비가 덜 됐어도, 불확실해도. 자신을 미래로 던지는 것.

그게 두렵다면 정상입니다. 기투는 본질적으로 불안을 동반하니까요. 하지만 그 불안을 견디고 던지는 순간, 당신은 진짜로 살기 시작하는 겁니다.

지금 던지세요. 완벽하지 않아도, 준비가 덜 됐어도. 그게 당신이 존재하는 방식입니다.